스마트폰에서 인공지능을 쓴다고 하면 보통 질문을 서버로 보내고 답을 받아오는 장면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고급 스마트폰은 화면 뒤에서 음성·이미지·일정·앱 상태를 계속 살피면서 필요한 순간에 먼저 반응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기능을 배터리를 다 쓰지 않고 구현하려면 클라우드 서버만큼이나 스마트폰 안의 칩 설계가 중요합니다.
미디어텍은 2026년 9월 15일 플래그십 모바일 칩인 디멘시티 9600 프로(Dimensity 9600 Pro)를 발표했습니다. 회사가 이 제품을 설명할 때 가장 앞세운 변화는 2나노 공정과 ‘에이전트 AI’입니다. 2나노라는 숫자만 보면 제조 공정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독자가 확인해야 할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이 칩이 스마트폰 안에서 AI 작업을 더 오래, 더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도록 연산 장치와 메모리 구조를 어떻게 묶었는지, 그리고 그 약속이 실제 제품에서 확인됐는지입니다.
2나노보다 중요한 것은 칩 안의 역할 분담입니다
디멘시티 9600 프로는 Arm의 C2 울트라와 C2 프로 코어를 2개·3개·3개로 조합한 ‘올 빅 코어’ CPU 구조를 사용합니다. 여기에 서로 다른 역할을 맡는 두 개의 NPU를 붙였습니다. 고성능 NPU 1090은 생성형·에이전트 AI 같은 무거운 작업을 맡고, 슈퍼 이피션트 NPU 2.0은 백그라운드에서 계속 돌아가는 가벼운 감지와 스케줄링을 담당한다는 설계입니다.
이 구분은 스마트폰 AI의 현실적인 약점을 겨냥합니다. 음성 호출이나 화면 속 사물을 감지하는 작업을 매번 가장 큰 연산 장치로 처리하면 응답은 빨라질 수 있어도 전력과 발열 부담이 커집니다. 반대로 저전력 영역에서 필요한 작업을 먼저 처리하고 복잡한 요청이 들어올 때만 고성능 장치를 깨우면, 사용자가 체감하는 대기 시간과 배터리 부담 사이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칩이 ‘AI를 지원한다’는 말보다 어떤 작업을 어느 장치가 맡는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미디어텍은 전 세대 플래그십과 비교해 단일 코어 성능 17%, 멀티 코어 성능 15%가 높아졌다고 밝혔습니다. 보도자료가 말한 멀티 코어 전력 소비 61% 감소도 회사 시험실에서 나온 전 세대 비교 주장입니다. 이를 실제 스마트폰 배터리 사용시간 61% 증가로 환산할 수는 없으며, 배터리 결과는 화면·통신·냉각·소프트웨어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온디바이스 AI 성능은 아직 ‘지원’과 ‘체감’을 나눠 봐야 합니다
미디어텍은 NPU 1090이 이전 세대보다 대규모 언어모델의 프리필 처리 성능이 51% 높고, 토큰을 생성할 때 와트당 성능이 55% 좋아졌다고 설명합니다. 프리필은 사용자의 질문과 앞선 대화 내용을 모델이 읽고 첫 답변을 준비하는 구간입니다. 이 단계가 빨라지면 AI가 생각을 시작하는 듯한 지연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수치 역시 회사가 제시한 시험 결과이며, 어떤 모델·정밀도·소프트웨어 버전·열 조건에서 측정했는지는 공개된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제품 페이지는 최대 300억 개 파라미터 규모의 온디바이스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한다고도 적었습니다. 여기서 ‘지원’은 모든 스마트폰에서 300억 파라미터 모델을 같은 속도와 품질로 실행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델의 양자화 방식, 실제 메모리 용량, 제조사가 허용한 앱과 기능, 발열에 따른 속도 제한이 모두 필요합니다. 에이전트 AI가 여러 앱을 넘나들며 작업하려면 칩뿐 아니라 운영체제 권한과 앱 연동도 갖춰져야 합니다.
메모리와 저장장치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미디어텍은 이 칩이 LPDDR6와 UFS 5.0을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제품 사양에는 LPDDR5X도 함께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디멘시티 9600 프로 스마트폰에 LPDDR6가 들어간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어떤 메모리와 저장장치를 실제로 선택할지는 제조사의 원가·공급·제품 등급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같은 칩을 쓴 휴대전화라도 AI 모델을 불러오는 속도와 멀티태스킹 경험이 달라질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 스마트폰이 나와야 2나노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TSMC는 자사의 N2 공정을 나노시트 트랜지스터 기반의 차세대 로직 공정으로 설명하며 2025년 4분기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공정이 발전하면 같은 전력에서 더 많은 연산을 하거나 같은 성능을 더 적은 전력으로 구현할 여지가 생깁니다. 그러나 공정 이름만으로 특정 칩의 배터리 수명이나 발열을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칩 설계, 제조 수율, 냉각 부품, 스마트폰 외형과 소프트웨어가 함께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미디어텍은 디멘시티 9600 프로와 9600M을 탑재한 첫 스마트폰이 올해 3분기에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로이터도 같은 발표를 보도하면서 첫 단말이 곧 출시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2026년 9월 16일 현재 독립 매체가 실제 판매 단말을 장시간 사용해 배터리·발열·AI 응답성·게임 지속 성능을 검증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칩 설계와 회사의 시험 결과이지, 소비자가 손에 쥘 완성품의 경험이 아닙니다.

미디어텍이 노리는 곳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수익 구조입니다
로이터는 이번 칩 발표를 미디어텍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퀄컴과 경쟁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했습니다. 미디어텍은 스마트폰 제조사들과 부품 비용 상승의 영향을 줄일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AI 기능이 고급 스마트폰의 차별점이 될수록 칩 제조사에는 더 높은 연산 성능과 전력 효율을 동시에 제공할 이유가 생기지만, 첨단 공정과 메모리·패키징 비용은 제품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발표를 ‘2나노 스마트폰이 곧 모든 AI를 대체한다’는 이야기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미디어텍이 실제로 얻고 싶은 것은 고급 단말에서 AI 작업을 기기 안에 더 많이 남겨 두면서도 응답성과 전력 효율을 맞추는 설계 주도권입니다. 소비자는 첫 탑재 제품의 가격, 배터리 용량, 냉각 구조, 기본으로 제공되는 AI 기능, 장기 소프트웨어 지원을 함께 봐야 합니다. 칩 이름만으로 구매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확인할 항목이 남아 있습니다.
디멘시티 9600 프로는 스마트폰의 AI가 클라우드 기능의 부속품에서 기기 설계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다만 그 변화가 실제로 좋은 사용 경험이 되는지는 2나노라는 문구가 아니라 완성된 휴대전화에서 측정될 배터리·발열·지속 성능과 앱 지원으로 판가름 납니다. 첫 제품이 출시된 뒤 독립 테스트가 나오면 이번 발표의 숫자와 실제 체감 사이의 간격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 MediaTek, 「MediaTek Dimensity 9600 Pro Sets New Standard for Flagship Smartphone Chips」
- MediaTek, 「MediaTek Dimensity 9600 Pro」 제품 페이지
- Reuters, 「MediaTek launches new mobile chip using TSMC’s most advanced technology」
- TSMC, 「2nm Technology」
- TSMC, 「2025 Annual Report」
- TSMC Research, 「2nm Platform Technology」
- Arm, 「Arm introduces new AI-native compute platform built for agentic AI and mobile graphics」
